• 국가가 멸망하는 사회의 7가지 악

    2008. 6. 11.

    by. 꼼발남자

    국가가 멸망하는 사회의 7가지 악

     

    원칙없는 정치- Politics without Principles

    노동없는 부- Welth without Work

    양심없는 쾌락-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없는 교육-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없는 상업- 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없는 과학- 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없는 종교- Worship without Sacrifice

     

    ------ 마하트마 간디의 비문 中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
    [連友포럼,No.948]
    www.younwooforum.com

     

     

     

    『7대 사회악과 7가지 리더쉽』



    이승률 :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 連友포럼 회장



    연일 계속 보도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善終)과 장례식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다른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인물을 마음 속에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인도의 문호 R. 타고르로부터 '마하트마(Mahatma: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한 시(詩)
    를 받고, 그 후로 마하트마 간디라고 불리게 된, 인도 건국의 아버지이자 인류 역사상
    비폭력의 원리를 개인으로부터 사회와 정치의 수준으로 확장시킨 최초의 지도자인 간디
    (1869-1948) 옹이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재임 3년만인 1981년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인류평화
    를 위한 의식을 집전하고 있을 때 터키인 회교도 메메트 알리 아그자의 흉탄을 맞고 쓰러
    진 것과 같이, 1948년 1월 30일 뉴델리광장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간의 유혈충돌을
    막기 위해 화해와 설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던 가운데 나투람 고드세라는 반(反)이슬람
    힌두교 광신자로부터 저격을 받고 쓰러졌다. 교황은 6시간의 대수술을 받은 뒤 4일만에
    의식을 회복했지만, 간디 옹은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간디가 총탄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비보를 듣고 세기의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방송
    인터뷰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뒷 세대 사람들은, 이런 인물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걸어다녔다는
    사실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영국의 타임지(誌)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을 전하며 "2천년 교황청 역사중 그만큼 강력
    한 목소리를 낸 교황은 없었으며, 도덕 가치가 실추된 요즘 세태에서 선한 인생의 비전을
    제시하고 전 세계가 이를 따르도록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위대한(The Great)'이란 존칭을 붙이기로 했다는 것은 곧 성인(Saint)으로 추대키로
    결정했다는 얘기"라고 보도했다.

    나는 이 두 분의 '위대한 영혼'과 '위대한 성인'의 발자취를 되새겨보며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사상적 공통점이 무엇일까 하는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7가지 유형의 위대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간디의 '7대 사회악'에
    대한 비판과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7가지 리더쉽'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4월 5일, USA투데이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7가지 리더쉽 교훈을 소개하는 특집기사(제목 : Business leaders can learn from pope)
    를 냈다.

    첫째 : 희생(Sacrifice)
    모범적인 최고경영자(CEO)나 대학총장, 지도자치고 개인적 만족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
    은 없다. 교황은 자신의 죽음과 그 죽음을 위엄 있게 처리하는 방법에서조차도 영감을
    주었다.

    둘째 : 진실성(Be genuine)
    마음에서 우러나는 말을 하는 리더가 이성에만 의존하는 리더를 이기는 법. 많은 사람이
    교황과 의견을 달리했지만 교황의 정직과 관심은 반대를 완화시켰다. 그의 온화함과
    인정미는 도덕적 권위를 더해줬다.

    셋째 : 용기(Be courageous)
    교황은 자신에 대한 암살 미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에서부터
    자본주의까지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의 도덕적 용기 때문이었다.

    넷째 : 솔선수범(Lead by example)
    교황은 타인에 대한 공감, 신뢰, 자기절제를 솔선수범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실행하는 사람이었지, 바티칸에 앉아서 지시나 하는 행정
    가가 아니었다.

    다섯째 : 지식(Be knowledgeable)
    교황은 윤리학 교수였으며 극작가요 시인이었다. 두 개의 박사학위를 받았고 폴란드가
    나치에 점령됐을 때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지적이었고 자신의 핵심 신념과 그 신념대로
    사는 데에 필요한 행동에 관해 많이 생각했다.

    여섯째 : 소통 능력(Communicate)
    교황은 중부 유럽의 잠재적 민족주의와 소통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전달자였기 때문에
    냉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영혼 대 영혼으로 말했다.

    일곱째 : 영감(Be inspirational)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지 못하거나 그들이 자신보다 큰 무엇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하지 못하면 감동적일 수 없다. 교황은 영혼의 관대함과 겸손함의 모범이었다.

    (*이상의 요약문은 워싱턴 주재 동아일보 권순택 특파원의 번역을 기초로 했다.)




    내가 인도 뉴델리의 야무나(Yamuna) 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간디 추모공원인 '라즈 가트
    (Raj Ghat)'를 방문한 것은 1995년 가을이었다. 선교여행으로 갔기 때문에 여러 가지 행사
    로 인해 일정이 바빴지만, 그곳까지 가서 간디를 만나보지 않고 온다는 것은 마치 큰 죄를
    범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었다.

    흔히들 라즈 가트에 대해 간디 묘지로 잘못 알고 있는데, 이곳은 유해와 유골을 모신 묘지
    가 아니고, 암살당한 후 힌두교 관습에 따라 화장한 곳이기에 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추모공원인 셈이다. 지금도 매주 금요일이면 간디 옹을 추모하는 모임이 끊이
    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얼마 전에 이곳을 다녀간 노무현 대통령 내외께서도 라즈 가트
    에 도착 직후 신발을 벗는 관례에 따라 슬리퍼를 착용한 채로 대리석 기념단에 헌화했다
    고 한다.

    그리고 또한 이곳은 독립 인도의 초대 수상이었던 네루가 화장된 곳이기도 하며, 그의 딸
    인 인디라 간디 수상, 인디라 간디의 큰 아들 라지브 간디, 둘째 아들 산자이 간디 등이
    차례로 암살된 후 모두 이곳 라즈 가트 주변에서 화장되어 그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특별
    한 인연(?)의 땅 이기도 하다. 이처럼 간디 추모공원인 라즈 가트는 독립 인도의 민족주의
    적 이상과 종교사상 및 사회갈등이 복잡하게 혼재하며 빚어낸 인도 현대사의 정치적 비운
    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이 라즈 가트의 간디 기념묘소 앞에 둘러쳐 세워진 화강암 돌벽에 간디의 유명한 '7대
    사회악'에 대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이 7대 사회악은 간디가 인도의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진리파지운동과 인도독립운동에 투신할 때인 1925년 <청년인도, Young
    India>인쇄물 신문매체를 통해 강조했던 그의 신념이었다.

    Seven Social Sins, Quated by Mahatma Gandhi in 'Young India', 1925

    * Politics without principle * Wealth without work
    * Pleasure without conscience * Knowledge without character
    * Commerce without work * Science without humanity
    * Worship without sacrifice

    얼마 전 「연우포럼」에 글을 올린 재미(在美)자유기고가 장동만 선생의 칼럼 <간디의
    '노력없는 부(富)'>에 보면, 언젠가 김영삼 전(前)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간디의
    어록이 쓰인 두루마리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고 하는데, 거기에 쓰인 어록이 바로 이 '7대
    사회악'이었다고 한다. 기왕이면 그 선물이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벽에 걸려 있어서,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누구나 다 극복해야할 과제로 이 '7대 사회악'을 국가의 공적
    (公敵)으로 삼고 과감히 실천에 옮긴다면,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건전하고 훌륭한
    국격(國格)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아무튼 장동만 선생의 칼럼에 있는대로 인용해 보면 간디의 '7대 사회악'은 1)원칙없는
    정치, 2)노력없는 부, 3)양심없는 쾌락, 4)특성없는 지식, 5)도덕없는 상거래, 6)인간성
    없는 학문, 7)자기희생 없는 신앙으로 번역된다.




    나는 간디의 '7대 사회악'과 요한 바오로 2세의 '7가지 리더쉽'의 공통점을 도출해 내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묵상하면서 관련 문헌과 자료들을 정리해보았다. 양자로부터
    제기된 일곱개의 항목들을 나열해놓고 서로 뜻이 통하고 의미가 부합되는 항목부터 먼저
    하나씩 연결해보았다.

    이때 나는 간디의 비판적인 부정문(negative statements)에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훈적인
    용어를 삽입하여 긍정문(positive statements)으로 도치시키는 방법으로 한 항목씩 새로
    운 문구를 만들어보았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퍼즐이 짜 맞춰지듯이 양자의 일곱개 항목들
    이 서로 짝을 이루며 통일된 사상체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1) 원칙없는 정치 + 용기 ⇒ 용기있는 정치(Politics with Courage)

    2) 노력없는 부 + 솔선수범 ⇒ 솔선수범하는 부(Wealth with Leading by example)

    3) 양심없는 쾌락 + 진실성 ⇒ 진실성있는 쾌락(Pleasure with Genuineness)

    4) 특성없는 지식 + 지식 ⇒ 특성있는 지식(Knowledge with Character)

    5) 도덕없는 상거래 + 소통능력 ⇒ 소통능력있는 상거래(Commerce with Communication)

    6) 인간성없는 학문 + 영감 ⇒ 영감있는 학문(Science with Inspiration)

    7) 자기희생없는 신앙 + 희생 ⇒ 희생하는 신앙 (Worship with Sacrifice)

    이렇게 정리해놓고 나서 그 뜻을 되새겨보니, 간디의 '7대 사회악'을 극복하기 위한 해결
    책이 완벽하게 정의된 것 같아 마음속으로부터 큰 확신과 감동이 솟구쳐 오르는게 아닌
    가!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역사의 시공을 뛰어넘는 두 위인들의 해후 ― 동서양의 만남,
    힌두교와 카톨릭의 만남, 그 '위대한 영혼'과 '위대한 성인'의 만남을 기리는 환호의 탄성
    을 질렀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나로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는 이 말 밖에 더 할 수가 없었다. 마침내 21세기
    인류사회의 진보를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진리의 도상'에
    서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불굴의 정신력과 용기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왔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를
    통해서 배우는 이 아름다운 덕목 ― 이른바 간디의 '7대 사회악'을 '인류사회의 7대 공동
    선'으로 전환시키는 '7가지 리더십'의 덕목을 우리의 개인적인 삶 속에, 가정과 기업과
    사회 속에, 그리고 국가와 국제관계 속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적용해 나가는, 성공적인
    미래 경영의 지혜와 실력을 갖추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바티칸 교황청 담당기자(1978-87, AP통신 로마주재 특파원)였으
    며, 1981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일어난 요한 바오로 2세 저격사건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
    의 목격담을 신속히 보도해 '외국 특파원 특종상'을 받았던 분이 있다.
    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자신을 위해 권고해준 "인간의 분열보다 화해에 봉사하는 삶이
    되야 한다"는 말씀을 받아들여 남은 인생의 철칙으로 삼고, 지금까지 이웃사랑을 위한
    평화봉사의 외길을 살아오신 분이다.

    그가 AP를 떠나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들어가 유엔공보국장과 특별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과 세계 속에 인류복지를 위한 국제 NGO사역을 장려해왔던 것도 이 말
    씀에 따른 행동이었으며, 그 후 2003년부터 '아리랑TV'사장으로 재직하면서 회사의 경영
    이념을 '봉사정신의 구현'에 두고, 매사에 솔선수범의 역량을 보인것도 모두 이 말씀의
    가르침에 따른 실천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 그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善終)뉴스를 듣고 기자회견 하는 자리에서,
    "교황을 취재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자신을 저격한 터키인을 면회한 자리에서
    서로 마주보며 '당신을 용서한다'고 말할 때였다"고 회고했다.

    내가 만나본 한국인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국제통 인사로 호평을 들었던 그는, 세계적
    인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부인이기도 한 구삼열 사장이다. 그는 분명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생애를 통해서 영감을 얻고 배운 그 아름다운 덕목(7가지 리더십)을 자신의 개인적
    인 삶 속에, 가정과 기업과 사회 속에, 그리고 국가와 국제관계 속에 하나씩 구체적으로
    적용해왔던, 성공적인 봉사자의 사례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그가 기자회견의 말미에 교황의 인물평을 묻자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교리에는 누구보다도 보수적이었지만 사회정의에서 만큼은 가장 리버럴한 교황이었지
    요. 그리고 그가 그토록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무엇보다 반(半) 신격화된 교황을
    버리고 따스한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USA투데이가 평한 대로, 영혼의 관대함과 겸손함의 모범으로 일관했던 지도자, 인간적
    인 너무나 인간적인 교황, 용서와 화해의 큰 목자되신 요한 바오로 2세는 마침내 지난
    4월 8일, 세계 방방곡곡에서 모인 400만명의 애도 속에 장례미사를 마친 후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돌아갔다.




    카톨릭 신자인 소설가 최인호씨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영면을 위해 '그분을 배웅하며'
    라는 제목의 감동적인 추모사를 남겼다.(조선일보 2005. 4. 4) 나는 본 칼럼을 통하여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한 고인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충정의 마음을, 이 글의 전문을 수록
    하는 것으로 대변코자 한다.

    「1981년 5월 성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회교도였던 터키인 알리 아그자
    로부터 총을 맞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78년 요한바오로 2세 교황이 된 그는 이로써 1917
    년 '파티마의 성모'가 던진 예언을 실현했다. 2000년까지 비밀로 묻혀있던 제3의 메시지
    내용은 '십자가와 순교자들에게 다가가는 흰 옷차림의 교황이 총격을 받고 땅에 쓰러지
    는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 하느님에 의해서 20세기 초에 점지되었던 '선택된 인간'
    카롤 보이티야. 폴란드 바도비체 출신의 가난한 직업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나치
    점령 하의 노동자, 채석장 인부로 일을 하면서도 시와 연극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크라코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46년 사제서품 후 1958년 38세
    젊은 나이로 주교가 됐다.
    교황은 자신을 저격한 아그자를 교도소로 찾아가 "아그자 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제게
    한 행동을 모두 용서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품안에서 한 형제이니까요"하며 손을 잡고
    함께 얼굴을 마주대고 기도를 드린다.
    지상의 권력자들처럼 힘과 전쟁으로가 아닌 십자가로 전 세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러시아
    의 회개를 이끌어낸 그는 1984년 5월 3일, 마침내 한국에 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그는 땅에 입을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이라고 찬미하였다.
    그의 한국 방문은 공식적으로는 103위 성인의 시성식을 집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신 군
    부의 독재에 항거하는 동족상잔의 처절한 비극이 일어난 직후, 비극의 땅을 밟은 것이란
    점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순교자의 땅에 엎드려 입 맞추고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서 "불화와 증오의 가운데서
    화해와 평화의 도구가 되라"고 축복했던 모습은 지상의 권력자들에게는 사도 바오로가
    말하였던 것처럼 '비위에 거슬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일일지는 모르지만'
    바로 그 행동은 수백 명의 순교자를 낸 영광의 땅, 거룩한 땅, 신시(神市) 대한민국에게
    피의 십자가를 선포함으로써 민족의 상처를 씻어내는 장엄미사였다.
    먼데서 찾아왔던 우리 민족의 친근한 벗 카롤 보이티야여, 그대가 남긴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시오."라는 유언처럼, 행복하게 당신을 환영하는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아버지의 나라로 돌아가서 편히 쉬소서.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 민족을 분단의 비극에서 벗어나 화합과 통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소서.」



    <필자 소개> 이승률: 연변과기대 대외부총장, 연우포럼 회장

    58세/경북고,동국대 철학과 졸업/同 대학원 석사/중국 연변대학 정치학부 석사/78~85년
    종합환경계획연구소 대표/86년~現在 반도환경개발(주) 회장/02년~現在 월드투자파트너
    스 대표이사,(주)랜드뷰 회장/91년~現在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이사/98년~現在 연변
    과학기술대학 겸임교수/01년~現在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기획단장/01년~現在 몽골녹색
    농업기술센타(GATC) 고문/02년~現在 우즈베키스탄 도스트릭 깔리지 설립이사/03년~
    現在 [連友포럼] 회장/04.8~現在 중국 연변과학기술대학 대외담당 부총장
    /이메일:
    ban111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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